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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쓴것

가을의 시, 가을시 가을 노래 / 박꽃

by 하니번잡 2019. 10. 24.

가을의 시, 가을시/ 박꽃

 


 
당신은
어느 무덤가에 피어나
긴 이야기를 갖고서
덩굴마다 맺히어 살면서도
말못하는 가슴으로
흐느낄 수도 없어
하얗게 핀
어느 여인 입니까?

당신은
어느 옜 뜨락에
쓸쓸히 주저 앉아서
잎새마다 서리어
떨구지 못하는 눈 망울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늦은
가을 했살입니까?

당신은
어느 화가의
내모난 가슴처럼
밤마다 가다리는
허무한 아침으로
하얗다 못해 파래지는
꽃잎 입니까?


가을의 시, 가을시/ 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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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덤가에 피어나 밤에도 하얗게 보였던 박꽃
밤에 그곳을 찾아와 새벽까지 울고간
어느 미망인의
슬픔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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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미인

초가 지붕 마루에
흰옷 입은 아가씨
부드럽고 수줍어
황혼 속에 웃나니
달빛 아래 흐느끼는
배꽃보다도
가시 속에 해죽이는
장미 보다도
산골짝에 숨어 피는
백합 보다도
부드럽고 수줍어
소리 없이 웃나니
초가집의 황혼을
자늑자늑 씹으며
하나 둘씩 반짝이는
별만 보고 웃나니




순백의 정결

박꽃의 희디흰 빛깔은 고독 속에 홀로 간직한 청순미와 함께 무섬증이 들도록 섬짓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가련미를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꽃이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데 반해 박꽃만은 그런 느낌과는 달리 눈물과 비애미를 간직하고 있다. 

남들이 모두 잠든 밤에 피어 있는 박꽃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머니나 누이를 생각하게 된다.

박꽃은 우리 겨레 마음의 텃밭에서 덩굴을 뻗어나가 가을들판에서 피어나고 있다. 

박꽃의 순수 비애미를 함축한 강렬한 인상은 민족 정서의 일면을 보여준다.

박꽃이 안으로 안으로 다스려온 그리움이 마침내 영글면 박이 열린다. 

농가 울타리와 산비탈에 그리고 밭두렁에 주렁주렁 열리는 박은 가을의 풍요로움과 흥취를 돋워준다. 

소중한 모습으로 또한 정겨운 가을서정으로 자리잡고 있는 박꽃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꽃은 밤에만 피어나는데 식물 각각의 생체시계때문이라고 합니다.

 

낮에 피는 여러가지 꽃들이 벌과 나비로 하여 수분을 시키듯이 박꽃은 박각시나방이라는 곤충이 수분을 시킵니다.

 

힘찬 날개짓과 긴 주둥이로 모르는 사람은 벌새로 오인하는 박각시의 이름의 유래는 밤에 꽃잎이 벌어지는 박꽃을 찾아가 그 앞에서 윙윙대며 꿀을 빨고 있으니 신랑인 박을 찾아온 각시라는 뜻이랍니다.

 

따라서 이 박각시가 활동하는 초저녁부터 밤에 꽃을 피워야 수정을 할 수 있겠죠.

낮에 피는 꽃이든 밤에 피는 꽃이든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시계가 없던 옛날, 여름 해가 너무 길어 언제 저녁밥을 지어야 할지 몰라 애태울 때, 신기하게도 저녁 5-6시 정도가 되면 박꽃이 피어 제때에 맞춰 밥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인의 살결을 박속에 비유하듯 꽃도, 속도 모두 다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박속은 맛있는 반찬으로 박껍데기는 요긴한 바가지로, 박꽃은 신기한 시계로 쓰임이 많아 옛날부터 여인네들과 아주 가까운 식물이었습니다.

요즘은 바가지로 쓰이지 않는 대신 박껍데기 바깥에 그림을 새겨 넣어 비싼 장식품으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여인들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신기롭습니다.